“영남 선거 안 할라카나”…김부겸 분패 부른 내부의 복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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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정 2026.06.06. 오전 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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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지방선거 대구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6월 4일 대구 달서구 두류동 선거사무소에서 열린 캠프 해단식에 참석해 생각에 잠겨 있다. 연합뉴스
“지금부터 20년 전 부산(시장) 선거에서 떨어진 외로운 사나이 노무현이 했던 말 기억나죠? ‘농부는 밭을 탓하지 않는다’.”

6월 4일 대구 두류동의 더불어민주당 대구시장 캠프 해단식. 김부겸 전 국무총리(이하 경칭 생략)가 연설 말미에 아쉬워하는 지지자들을 달래며 이렇게 말했다. 김부겸은 이날 45.05%를 득표해 추경호 대구시장 당선인(53.92%)에 8.87%포인트 차로 졌다. 해단식이 끝나갈 무렵 지지자들이 다소 격한 표현으로 이번 선거의 아쉬움을 표현하자 김부겸은 “자갈밭이라도 갈고 닦으니 또 늘어나고, 또 늘어나고 해서 마침내 옥토로 바꿨던 경험들이 우리 동지들은 있잖느냐”고 주변을 다독였다.

김부겸은 “개인적으로는 이번 선거를 치르고 나니까 솔직히 말해서 많이 지친다”며 뜨거웠던 봄을 뒤로 하고 대구 정치판을 떠났다. 3월 30일 그가 대구 동성로 2·28 기념공원에서 “당이 대구를 지켜야지, 왜 맨날 대구가 당을 지켜줘야 하느냐”고 외치며 출마를 선언했을 때만 해도 대구는 ‘김부겸 대망론’으로 들썩였다. 하지만 김부겸은 선거 기간 동안 상대 후보뿐 아니라 중앙 정치 이슈와, 때론 정부·여당과도 맞서며 내우외환의 레이스를 감내해야 했다. 6년 만에 대구로 돌아온 노(老)정객이 67일간 벌인 사투의 변곡점을 톺아봤다.

4월 30일 더불어민주당 천준호 원내대표 직무대행과 박성준·전용기·김현정·이건태 등 국정조사특위 위원들이 국회 의안과에 '윤석열 정치검찰 조작기소 진상규명 특검법'을 제출하고 있다. 연합뉴스
상승세에 찬물 끼얹은 ‘공취 특검’
선거 초반 김부겸은 각종 여론조사 양자대결에서 모두 오차범위 밖 우세를 보이며 상승세를 탔다. 상대인 국민의힘에서 대구 지역 국회의원 5명이 예비후보로 난립하고, 주호영 의원과 이진숙 전 방송통신위원장(현 달성군 국회의원)이 당의 공천 배제 결정에 반발하는 등 자중지란이 한창이던 시기였다. 김부겸은 ▶대구 산업 대전환 프로젝트(4월 19일) ▶신공항 건설 초기 사업비 1조원 확보 및 첨단산업도시 육성(4월 23일) 등 메가 공약을 발표하며 현안 이슈를 선점했다.

초반 기세의 정점은 정청래 대표, 한병도 원내대표 등 지도부와 민주당 국회의원 49명이 참여한 선거사무소 개소식(4월 26일)이었다. 대구 시민 5000여명이 운집한 행사를 두고 캠프 핵심 인사는 “동대구역에 내린 김부겸에게 ‘그래, 보따리에 뭐 가져왔노’라며 기대감을 보이는 대구 시민들을 향해 신뢰를 심어줄 수 있었던 상징적 장면”이라고 했다. 같은 날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된 추 당선인이 선거 공약과 일정을 발표할 때마다 “김부겸을 따라하는 것 아니냐”는 눈총을 받은 배경이다.

5월 14일 대구 수성구의 한 교차로에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의 현수막이 나란히 걸려 있다. 대구=하준호 기자
그러나 문제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터졌다. 민주당이 4월 30일 이재명 대통령이 재판을 받고 있는 사건에 대해 공소취소가 가능하도록 하는 특검법 발의를 강행하면서 대구 여론이 겉잡을 수 없이 악화했다. 한 측근은 “후보의 실수나 캠프 내 이슈, 상호 네거티브도 없었는데 난데없는 ‘공취’ 변수가 민주당에 대한 거부감을 증폭시켰다”며 “당과 인물 사이에서 고민하던 대구 시민들에게 김부겸을 찍지 않을 명분을 제공한 셈”이라고 탄식했다. 캠프 관계자 여럿이 중앙당에 “영남 선거는 포기했느냐”고 항의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울고 싶은데 뺨 때린” 청와대의 SNS
공취 위기를 넘을 방법은 ‘김부겸은 민주당과 다르다’는 점을 부각하는 것 뿐이었다. “김부겸이 싫어서 안 뽑겠다는 사람은 적다”는 판단에 독자 노선을 강화했다. 김부겸은 5월 3일 대구시당 필승 전진대회에서 “고생하면서 뛰고 있는 동지들을 버릴 셈이 아니라면 여러분들이 쉽게 던지는 말 한마디, 여러분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법안 하나, 신중해달라고 요청드리고 싶다”고 당을 꼬집었다. 공식 선거운동 기간에도 “대구시장에 당선되면 민주당의 쓸데없는 강경파들 제어하겠다”(5월 21일) “김부겸을 시장으로 만들면 민주당 독주를 견제할 강력한 내부 목소리가 생긴다”(5월 28일) 등 여당 견제론을 반복적으로 발신했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6월 3일 대구 달서구 두류동 선거사무소에서 6·3 지방선거 출구조사 결과 발표를 지켜보고 있다. 뉴스1
하지만 복병은 곳곳에 있었다. 정청래 대표가 5월 3일 부산에서 ‘오빠 강요’ 논란을 일으킨 데 이어 김용범 청와대 정책실장의 ‘국민배당금’ 제안(5월 11일), “고금리·고물가·고환율은 성공의 비용”(5월 24일) 발언이 대구 보수층의 반감을 극대화했다. “정말 울고 싶은데 뺨 때린 격”이라는 캠프 내부의 반응은 “제발 대통령을 측근에서 모시는 고위직에 있는 사람들은 여러 언변과 행동에 조심을 하라”(5월 26일 2차 TV토론)는 김부겸의 경고로 이어졌다.

이 대통령이 참전한 스타벅스의 5·18 ‘탱크데이’ 마케팅 논란도 대구에선 불편한 이슈였다. 도덕적 비난을 넘어 법적 제재와 정부 차원의 불매 운동으로 번진 게 화근이었다. 칠성시장 상인 김모(60대)씨는 이를 두고 “기업의 자유를 정부가 나서서 억압하는 것 같아 지켜보는 사람도 불안하게 만든다”(5월 26일)고 말했다. 김부겸은 “이제 이 정도 선에서 그쳤으면 한다. 정부나 정치권이 특정 기업을 공개적으로 압박하거나, 소비 자체를 비난하는 분위기로 흐르면 안 된다”(5월 26일)며 악영향을 차단하려고 안간힘을 썼다. 당시 캠프는 2020년 총선 실패의 주요 원인 중 하나였던 “김부겸은 한 게 없다”는 프레임에 말리지 않기 위해 총력 대응 중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연달아 터진 서울발(發) 악재가 이런 노력을 무력화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과 추경호 국민의힘 대구시장 후보가 5월 31일 오후 대구 중구 서문시장을 찾아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스1
선거 막판 대구에 등장한 ‘선거의 여왕’
박근혜 전 대통령이 5월 23일 추경호 당선인과 함께 칠성시장을 방문한 것 역시 김부겸 캠프로선 불의의 적시타였다. 박 전 대통령의 막판 등장을 어느정도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까지 적극적으로 선거 운동을 한 건 2017년 탄핵 이후 처음이기 때문이다. 김부겸은 출마 선언 직후부터 지역 원로 예방 차원에서 박 전 대통령과의 만남을 공개적으로 희망했지만, 박 전 대통령의 측근인 유영하 국민의힘 의원으로부터 거절당했다. 캠프 참모들이 “같은 날 후보 일정에 칠성시장을 끼워넣어 보수 결집을 희석시키자”는 의견을 내기도 했지만, 김부겸은 결과적으로 ‘김부겸은 다 큰 대구의 아들, 추경호는 박근혜라는 엄마에 기댄 어린 아들’이라는 프레임을 활용한 정면돌파를 택했다.

5월 25일부터 재개된 ‘벽치기 유세’도 그렇게 시작됐다. 아파트 단지에서 벽을 향해 연설한다고 해 이름 붙여진 벽치기는 2016년 대구 수성갑 선거 승리 신화를 쓴 김부겸만의 독특한 유세법이다. 김부겸은 TV토론이 개최된 5월 26일 외에는 매일 유세차를 타고 대구 구석구석을 누비며 “보수의 심장 지키려다 대구 심장 다 꺼져갑니더”라고 외쳤다. 대구 전역에 설치한 현수막 문구는 ‘김부겸, 대구 경제 살릴 마지막 기회’가 됐다. 비슷한 시기 부인 이유미 여사와 둘째 딸 배우 윤세인(본명 김지수)씨까지 함께 전통시장을 돌며 남편과 아버지에 대한 지지를 호소했다. 김부겸은 5월 31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막판 변수는 마지막 순간의 마음”이라며 “내게 남은 일은 끝까지 진심을 전하는 것뿐”이라고 했다. 6월 2일 마지막 유세 때 작고한 선친을 향해 “도와주이소”라며 사부곡(思父曲)을 부르고 눈물을 보인 것도 계획에 없던 즉흥적 감정의 발로였다고 한다.

김부겸 전 국무총리가 5월 31일 대구 봉무동 아파트단지에서 벽치기 유세를 하고 있다. 대구=하준호 기자
김부겸은 대구에 ‘격전지’라는 생경한 수식어를 남긴 채 졌다. 그는 6월 4일 오전 2시 30분 승복 연설에서 “대구에 경쟁이 벌어지고 여야가 시민께 잘 보이려고 하는 서비스로의 정치 가능성을 봤다”며 “제 개인의 패배이지 변화를 열망하는 대구시민의 패배가 아니다. 좌절하거나 절망하지 말라”고 말했다. 같은 날 박성민 정치컨설팅 ‘민’ 대표는 중앙일보 정치 토크쇼 ‘황현희의 불편한 여의도’에서 “(김부겸이) 선거에 불려나오는 과정, 선거하는 과정, 패배를 인정하는 과정을 보면 우리가 옛날에 동경했고 그리워하던 그 시절 정치였다. 부끄러움도 알고 사양지심(辭讓之心)도 있는 그런 정치를 오랜만에 봤다”고 평했다. 추경호 당선인은 당선 인사를 통해 “김부겸 후보님께 감사와 존경, 위로의 말씀을 함께 전한다”며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크게 서로 불편한 점이 없이 최선을 다했다. 앞으로도 자주 만나 많은 조언을 듣겠다”는 뜻을 밝혔다.

노무현은 DJ, 이강철은 천정배 변수에 좌절
더불어민주당 계열 정치인이 영남 선거에 도전했다가 승리 목전에서 외부 변수로 고배를 마셔야 했던 사례는 적지 않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995년 6·27 지방선거에 민주당 부산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92년 3·24 총선 때 부산 동에서 재선에 실패한 뒤였지만, ‘5공 청문회 스타’라는 높은 인지도에 힘입어 선거 초반에는 경쟁자인 문정수 민주자유당 후보를 20%포인트 이상 앞선다는 여론조사 결과가 나오기도 했다.

1995년 6월 제1회 지방선거 부산시장 선거에 출마한 노무현 당시 민주당 후보가 유권자들에게 둘러싸인 채 양손을 들어올려 승리의 브이(V)자를 만들어 보이고 있다. 사진 노무현사료관
그러나 김대중(DJ) 전 대통령(당시 아태재단 이사장)이 전북 지원 유세 중 던진 ‘지역등권론’이 화근이었다. “어느 한 지역이 권력을 독점해서는 안 된다”며 호남 소외 현상을 해소해야 한다는 취지였지만, 결과적으로 동서 지역 구도를 더욱 굳히면서 민주당의 사지(死地)였던 부산 한복판에 뛰어든 노 전 대통령의 지지율에도 치명타를 입혔다.

노 전 대통령은 37.6%를 득표하며 선전했지만, 문 후보(51.4%)에 13.8%포인트 차로 패했다. 선거 사흘 전 한겨레신문에 실린 박재동 화백의 만평에는 DJ가 지원사격을 하며 ‘지원사격 받았나’라고 묻자 노 전 대통령이 DJ의 포탄을 맞고 ‘내가 맞았다, 오버’라고 답하는 내용이 담겼다.

2005년 10·26 대구 동을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한 이강철 당시 열린우리당 후보가 10월 7일 대구 반야월시장에서 시민들과 악수하고 있다. 중앙포토
노무현 정부 시절 치러진 2005년 10·26 대구 동을 국회의원 재선거는 이번 대구시장 선거와 유사한 경우다. 당시 여당인 열린우리당은 이강철 전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을 공천했다. 노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이 전 수석은 당의 지원을 고사하고 홀로 유세를 다니면서 ‘집권여당 실세의 지역발전론’을 공약으로 내세워 유권자들의 호응을 끌어냈다.

당시 한나라당은 보수 텃밭 사수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한나라당 대표)의 비서실장이었던 유승민 의원을 비례대표에서 사퇴시킨 뒤 대구 동을에 전략공천했다. 선거는 현직 대통령과 야당 대표의 대리전 양상으로 흘렀고, 선거 전 각종 여론조사에서 두 후보는 오차범위 내 팽팽한 초접전으로 승패를 예측하기 힘들었다.

2005년 10월 27일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대표가 유승민(맨 왼쪽) 당시 당선자 등 10·26 재선거에서 승리한 후보들에게 꽃다발을 전달한 뒤 웃고 있다. 왼쪽부터 유 당선자, 박 대표, 정진섭·임해규 당선자. 중앙포토
그런데 천정배 당시 법무부 장관이 선거 2주 전인 10월 12일 강정구 동국대 교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에 대해 불구속 수사를 지휘하는 수사지휘권을 헌정사상 처음 발동하면서 논란이 일었다. 한나라당은 “현 정권이 국가의 정체성을 뒤흔들고 있다”며 쟁점화했고, 선거 이슈가 지역 발전에서 이념 논쟁으로 뒤바뀌며 이 전 수석의 지지세가 꺾였다. 박 전 대통령은 선거 막판 대구에 상주하다시피 하며 보수 결집에 힘을 보탰다.

결국 이 전 수석은 대구에서 44.0%라는 높은 득표율에도 유승민 후보(52.0%)에 8.0%포인트 차로 졌다. 이 전 수석은 5월 13일 대구에서 중앙일보와 만나 “당시 9시 뉴스가 수사지휘권 얘기로 도배되면서 영향이 엄청났다”며 “그 변수만 없었다면 결과가 달라졌을 수 있다는 아쉬움이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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